나 혼자 여행한다는 것. 제주 올레 10코스에서 9코스까지 거꾸로 걸으며.
홀로하는 여행을 즐긴다는 건 외로움과 고독을 통제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신호같다. 제주도에 온 지 이틀째되던 날에 혼자 서귀포 하늘을 가득 메운 푸른 구름을 보면서 올레 길을 걸었고. 수국 가득 피어 있는 송악산 길을 따라가고, 조각배에 의지해 물질하는 할머니를 봤다. 평소같았으면 이쯤에 쓸쓸하다는 기분을 받았을텐데, 굽이치는 길을 걸으면서 외롭다거나 나는 고독한 존재라거나 하는 새벽 두 시 쯤에 느낄만한 감성은 전혀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올레길 마다 벽을 치고 있는 수 많은 현무암들은 삼다도 지명이 공연히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말해주는 순간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은 비수기 시즌때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난다는 깨닫는 때에도. 저 조그맣고 빨갛게 피어난 꽃은 봄 날이 지났는데도 만개하고 있는 이유는 뭔지, 내 발소리에 놀라 푸드득 날라가는 저 새 이름은 뭔지 가벼운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는 순간에도 내 감정 사이에는 고독이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 같다.
홀로 여행하며 깊은 생각에 빠지곤 했던 탓에 그냥 지나쳐버린 제주도 풍경이 많았지만 그것 조차 연인을 떠올리는 마음이었고, 보고싶다는 마음보다는 언젠가는 같이 와서 먼저 들렸던 내가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것 조차 외로움은 아니었다.
혼자의 여행은 고독과는 거리가 멀었고,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쓸쓸함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신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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